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안에 있던 것들이 멀쩡했다. 정전이 네 시간 넘게 이어졌는데도, 냉동칸 가장자리에 쌓아둔 얼음이 아직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건드려보니 표면이 축축했고, 눌리는 느낌이 왔다. 이미 조금 녹아있었다. 조금 더, 딱 한 시간만 더 늦었으면 다 망가졌을 텐데. 그 순간 나는 뭔가를 해냈다는 얼굴로 냉장고 문을 닫았다. 그런데 내가 한 게 뭐였지? 내가 했다고 착각한 것들 위기라고 부를 만한 일들을 돌아보면, 내가 이겨낸 것들의 절반쯤은 사실 그냥 지나갔다는 쪽이 정확하다. 폭풍이 왼쪽으로 틀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