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덜미에 뭔가 닿아서 손바닥으로 세게 내리쳤다. 벌레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밤공기가 풀잎에 맺혀 흘러내린 이슬이었고, 그 차가움이 등줄기를 타고 허리까지 내려가는 동안 나는 아직 하늘을 보지 못한 상태였다. 경기도 외곽 어느 밭 옆, 차 트렁크에서 꺼낸 캠핑 매트 위에 누운 지 삼 분째. 스마트폰 손전등을 끄자 사방이 순식간에 무너지듯 어두워졌고, 그제야 고개를 뒤로 젖혀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이 너무 많아서, 처음엔 그게 하늘인지 먼지 낀 유리창인지 구분이 안 갔다. 눈이 어둠에 적응할수록 별은 점점 더 늘어났고, 늘어나는 만큼 나는 자리에서 몸을 살짝 웅크렸다. 춥지도 않은데 팔짱을 꼈다.
일주일 전, 새벽에 잠이 안 와서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온라인 "우주 공포증 테스트"라는 걸 발견했다. 심심풀이로 열두 개 질문에 답했는데 결과가 예상보다 구체적이었다. "당신은 광활함 앞에서 신체적 긴장을 느끼는 유형입니다." 어지럽다, 숨이 막힌다, 별자리 사진을 오래 보면 손끝이 저릿하다 — 항목들을 읽는데 하나하나 다 내 얘기 같아서 조금 무서웠다. 그래서 확인해보고 싶었다. 진짜 그런지, 진짜 밤하늘 아래 누우면 그 결과가 맞는지.
우주 공포증 테스트
이런 테스트들은 보통 정식 진단 도구는 아니고, 대중심리 콘텐츠 형태로 퍼져 있다고 알려져 있다. 질문 구성은 대체로 비슷하다. 은하 사진이나 무한대로 이어지는 별밭 이미지를 보여주고 그 순간의 신체 반응을 묻는다. 심장이 빨리 뛰는지, 갑자기 손발이 차가워지는지,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충동이 드는지. 광장공포증(넓은 공간에 대한 불안)이나 고소공포증과 비슷한 구조로, 대상만 '수직으로 무한히 위'로 바뀐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재밌는 건 테스트를 직접 해보면, 문항을 읽는 것만으로도 몸이 반응한다는 점이다. 나는 은하 사진 한 장을 보면서 실제로 숨을 잠깐 참았다. 그러니까 이 테스트가 알려주는 건 정답이 아니라, 지금 내가 '큰 것' 앞에서 어떤 자세를 취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힌트에 가깝다. 만약 별 사진을 보다가 이유 없이 시선을 피하게 된다면, 그게 바로 자가진단의 시작점이다. 굳이 테스트 사이트를 찾지 않아도, 오늘 밤 하늘 사진 한 장을 오래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확인된다.
나는 그 결과를 믿을 수 없어서, 진짜 하늘 아래로 가보기로 했다.

우주 공포증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밭 옆에 누워서 별을 보는데, 처음 오 분은 순수하게 압도됐다. 별이 저렇게 많다는 걸 도시에서는 잊고 산다. 그런데 십 분쯤 지나자 이상한 감각이 왔다. 무섭다기보다는, 몸이 자기 위치를 못 찾는 느낌. 발밑이 땅인 건 아는데, 머리 위가 끝이 없다는 걸 눈이 계속 확인시켜주니까 균형 감각이 헷갈렸다.
나는 이게 왜 그런지 누워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사람의 몸은 눈앞 몇 미터, 넓어봐야 산 하나, 바다 하나 정도의 거리감에 맞춰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뱀이 몇 걸음 앞에 있는지, 낭떠러지가 얼마나 가까운지를 재는 감각이지, 몇 광년 떨어진 별빛의 거리를 재는 감각이 아니다. 그런데 뇌는 익숙한 계산법을 버리지 못해서, 계산이 안 되는 크기 앞에서도 어떻게든 반응을 내놓으려 한다. 그 결과가 어지럼증이고 숨 막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그게 공간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비교가 불가능해지는 상태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느꼈다. 무섭다는 감정은 원래 "저것보다 내가 작다, 저것보다 내가 느리다" 같은 비교에서 나온다. 그런데 저 하늘은 비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크기다. 비교할 수 없으면 두려움도 사실 정의가 안 되는데, 몸은 정의되지 않은 상태를 견디지 못해서 일단 두려움이라는 이름표를 붙여버리는 것 같았다.
무서운 게 아니라, 무섭다고 부를 단어가 없어서 무섭다고 부른 것 같다.
우주 공포증과 숭고함의 차이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진으로 볼 때는 이런 어지럼증이 온 적이 없었다. 사무실에서 은하 사진을 검색해 볼 때는 오히려 예뻤다. 여기 밭에서는 예쁘다는 말이 안 나왔다.
칸트라는 철학자가 이 차이를 오래전에 설명해 놓은 게 있다. 압도적으로 큰 것을 보고 느끼는 감정을 '숭고'라고 불렀는데, 그 핵심은 안전거리다. 폭포나 폭풍을 보고 감탄할 수 있는 건, 내가 그 폭포에 휩쓸리지 않을 자리에 서 있다는 걸 몸이 알기 때문이다.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압도당하면 그건 감탄이 되고,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압도당하면 그건 공포가 된다. 사진 속 은하는 액자 안에, 화면 안에, 손바닥 안에 있었다. 그 프레임 자체가 나를 지켜주는 벽이었다. 밭에서는 그 벽이 없었다. 하늘이 액자 없이 바로 내 얼굴 위로 쏟아졌다.
이 문장, 너무 아름답지 않나요 — 라고 쓰고 싶을 만큼, 그 순간 하늘과 나 사이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유리도, 화면도, 심지어 지붕도. 숭고와 공포증은 그러니까 대상이 다른 게 아니라, 그 대상과 나 사이의 거리 하나로 갈리는 것이었다.

다시, 그 밭으로
거리가 문제라는 걸 깨닫고 나니 오히려 더 눕고 싶었다. 프레임 없이 온전히 그 감정을 느껴보고 싶어서 두 눈을 크게 뜨고 버텼다. 그런데 딱 그 순간, 저 멀리서 낮게 나는 비행기 불빛이 깜빡이며 지나갔고, 나는 반사적으로 "어 저거 뭐지" 하며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별이 아니라 비행기였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집중이 완전히 끊겼다. 다시 누웠지만 이번엔 등에 닿는 매트 이음새가 배겨서 자세를 고쳐야 했고, 그다음엔 저 멀리서 개가 짖었고, 그다음엔 핸드폰 배터리 부족 알림이 진동했다.
세 시간 동안 나는 정확히 세 번 정도만 그 어지럼증 근처까지 갔고, 매번 뭔가 시시한 것들이 끼어들어 그 감정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했다. 결국 나는 우주 공포증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지 못한 채로 매트를 접어 트렁크에 넣었다. 새벽 두 시, 히터를 켜고 운전석에 앉았는데 발밑에 젖은 양말이 축축하게 붙어 있었다.
집으로 오는 내내 룸미러로 자꾸 뒤를 봤다. 그 밭은 이미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그 위에 있던 하늘도 당연히 함께 사라졌는데, 나는 왜 자꾸 뒤를 확인했을까. 그 테스트 결과가 맞았는지 아직도 모른다. 다음에 또 그 밭에 눕게 된다면, 이번엔 비행기도 개도 없는 밤이 올까.
📎 참고한 자료
- 온라인 대중심리 테스트 콘텐츠 및 광장공포증·고소공포증 관련 일반 심리학 배경 지식 (자체 정리, 특정 출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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