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안쪽 자리였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증기를 내뿜는 소리가 이따금 대화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고, 나는 아이스아메리카노 잔 표면에 맺힌 물방울을 검지로 문지르고 있었다. 손끝이 축축하고 차가웠다. 그 차가움이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 뭔가 확실히 만져지는 게 있다는 느낌이었으니까. 맞은편에 앉은 친구가 얼음을 와그작 씹으며 물었다.
요즘 뭐 하고 지내?
별거 아닌 질문이었다. 안부 인사, 딱 그 정도의 무게였다. 그런데 나는 대답을 못 하고 잔만 만지작거렸다. 입 안에서 문장 서너 개가 동시에 줄을 섰다가 서로 밀치는 바람에 아무것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회사 일 얘기를 할까, 요즘 시작한 부업 얘기를 할까, 주말마다 나가는 소모임 얘기를 할까, 아니면 그냥 "그럭저럭"이라고 웃고 넘길까. 넷 다 사실이었고 넷 다 나였는데, 그중 뭘 골라도 나머지 셋을 배신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가슴 한복판이 훅 가라앉았다. 나쁜 일은 없었다. 그런데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만 남았다.
막연한 불안감 — 이름 없는 무게
마음이 무거운 이유를 찾아 검색창에 손가락을 얹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대개 그 무거움에는 딱히 붙일 이름이 없다. 실직도, 이별도, 시험도 아니다. 그냥 가슴 어딘가에 벽돌 한 장이 올라가 있는데 누가 언제 올려놨는지 기억이 안 나는 상태.
요즘은 한 사람이 동시에 여러 개의 자아를 굴린다. 본업이 있고, 부업이 있고, 취미로 시작했다가 계정까지 만든 무언가가 있고, 단톡방마다 다른 말투로 대답하는 내가 있다. 각각은 별문제 없다. 문제는 그 여러 개의 나 사이에 이어지는 다리가 없다는 것이다. 회사에서의 나와 소모임에서의 나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쓴다. 그 둘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달라는 질문 — "요즘 뭐 하고 지내?" 같은 — 앞에서 사람은 순간적으로 말을 잃는다. 대답할 게 없어서가 아니라 대답할 게 너무 많아서, 그리고 그 많은 것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묶이지 않아서.
이게 막연한 불안감의 정체에 가깝다. 무서운 사건이 예고된 게 아니라, 내 하루들이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는다는 감각. 도서관 서가에 책이 잔뜩 꽂혀 있는데 목차가 없는 것과 비슷하다. 책은 다 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지, 애초에 이게 한 권인지 여러 권인지조차 알 수 없다.

일상의 불편함 — 몸이 먼저 안다
친구가 다음 질문을 던지기 전, 내 손목에서 진동이 울렸다. 회사 슬랙이었다. 그 위로 부업 관련 채팅방 알림이 겹쳐 떴다. 확인 안 한 숫자 배지가 셋, 넷, 다섯. 나는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그런데도 어깨가 이미 조금 올라가 있었다. 턱에 힘이 들어갔다. 마시던 커피는 잔 안에서 얼음이 녹으며 색이 흐려지고 있었다.
마음이 무겁다는 감각은 사실 머리보다 몸에서 먼저 온다. 알림이 울릴 때마다 나는 순간적으로 "지금 나는 누구여야 하지"를 계산한다. 상사에게 보낼 말투, 부업 클라이언트에게 쓸 말투, 소모임 사람들에게 쓸 말투가 다 다르다. 하루에 그 전환을 스무 번, 서른 번 반복하면 몸은 그걸 노동으로 인식한다. 정작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카페에 앉아 있는데도 피로가 쌓이는 이유가 이거다.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했는데 어깨는 이미 하루치 일을 끝낸 사람처럼 뻐근하다.
친구가 내 표정을 보더니 짧게 물었다.
야, 너 왜 그렇게 멍해?
나는 웃으며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깨달은 게 있었다. 불편함의 실체는 어느 한 가지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여러 개의 나를 하루 종일 갈아 끼우는 그 전환 비용 자체가 몸에 남는 청구서였다. 남들 다 부업 하나쯤 있고, 남들 다 여러 모임에 나가는 시대라서 나도 따라 늘렸을 뿐인데, 늘어난 건 역할이고 줄어든 건 그 역할들 사이를 이어주는 시간이었다.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채로 다음 이야기가 시작되는 하루. 마침표를 찍을 틈이 없는 문장들.
마음이 무거울 때 해결 방법 — 이야기를 하나 끝내는 일
여기서 예상했던 방향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부업을 줄여라", "모임을 정리해라" 같은 조언. 그런데 며칠을 곱씹어보니 답은 정반대 쪽에 있었다. 문제는 여러 개를 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어느 것도 완결되지 못한 채 동시에 열려 있다는 것이었다. 컴퓨터 탭을 서른 개 켜놓으면 브라우저가 버벅대는 것과 똑같다. 탭을 다 닫으라는 게 아니라, 그중 딱 하나만 끝까지 읽고 닫아버리면 나머지 스물아홉 개도 신기하게 가벼워진다.
그래서 그날 카페에서 나온 뒤 나는 목록을 만들었다. 답장을 미뤄둔 메시지 하나, 시작만 하고 덮어둔 문서 하나, 가입만 해놓고 안 나간 모임 알림 하나. 그중 딱 한 가지를 그날 안에 완전히 끝내기로 했다. 거창한 정리가 아니었다. 그냥 미뤄둔 메시지 하나에 답장을 보냈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가슴의 벽돌이 한 장 내려간 느낌이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일이 불안의 강도를 낮춘다는 이야기처럼, 미완의 일에 마침표를 찍는 행위도 비슷한 효과를 낸다. 뇌는 열려 있는 이야기를 계속 신경 쓰고, 닫힌 이야기는 놓아준다.
마음이 무겁다면, 무거운 걸 다 내려놓으려 하지 말고 그중 하나만 끝까지 읽어볼 것.
이 문장, 너무 아름답지 않나요 — 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나는 이 단순한 방법이 며칠 사이 나를 꽤 가볍게 만들어준 것에 놀랐다. 완벽한 정리가 아니라 하나의 마침표. 그거면 충분했다.
침묵으로 남은 것
카페를 나서기 전, 친구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다.
다음엔 딴생각 말고 나만 봐라.
나는 웃었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얼음이 다 녹은 커피잔을 들고 나오는데, 손끝에 남아 있던 그 차가움이 어느새 미지근해져 있었다. 여러 개의 나 중 어느 것도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채로 나는 다시 거리로 나섰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미지근함이 나쁘지 않았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휴대폰에도 아마 확인하지 않은 알림이 몇 개쯤 쌓여 있을 것이다. 그중 딱 하나, 오늘 안에 끝낼 수 있는 건 어떤 걸까.
📎 참고한 자료
- 남들 다 사는 것 말고, 내가 살고 싶은 삶 - ohmynews.com
- 요즘 사람들은 뭐가 관심 있지? - 브런치
- N잡이 일상이 된 시대, 요즘 사람들의 사교 방식 - W Kore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