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저를 꺼내는 손이 잠깐 멈췄다.
찬장 두 번째 칸, 접시 무더기 바로 왼쪽. 그 자리에 항상 있던 머그잔이 없었다. 정확히는, 있어야 할 자리에 없었다. 어제 내가 꺼내서 씻고 건조대에 올려뒀으니까. 건조대에서 찬장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내가 그걸 안 했으니까. 별일도 아닌 그 사실을 인식하는 데 3초가 걸렸고, 그 3초 동안 뭔가가 흔들렸다.
뭘.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집에 혼자 있었다. 탓할 사람도, 탓받을 사람도 없는 평온한 아침이었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여름 비라서 소리가 두꺼웠다. 에어컨은 꺼진 채였고 실내 온도는 26도 정도였을 거다. 불쾌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잘못되지 않았다.
그런데 수저가 손에 들려 있지 않았다.
탓하지 않는 자리에서 생기는 것
죄책감에 대해 쓸 때 사람들은 으레 누군가를 떠올린다. 잘못한 상대방, 상처받은 대상, 사과했거나 하지 못한 장면. 죄책감이란 단어는 태생적으로 관계를 전제하는 것처럼 들린다. 내가 무언가를 했고, 그로 인해 누가 피해를 입었고, 그래서 내가 나쁜 사람이라는 구조.
그런데 아무도 없는 부엌에서 수저를 들다 멈추는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상대가 없다. 피해자도 없다. 사건도 없다. 그냥 머그잔이 제자리에 없고, 내가 그걸 안 돌려놨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아무도 화내지 않는다.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알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손이 멈춘다.
이 감각을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나는 오래 생각했다.
혼자만 아는 회계
최근 한국 사회에서 '혼자'라는 단어는 자꾸 두 방향으로 쪼개진다. 한쪽에서는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여행을 가고, 혼자 무언가를 완성하는 것이 하나의 미학으로 불린다. 자립, 취향, 선택. 다른 한쪽에서는 혼자 남겨진다는 게 여전히 어떤 결핍의 증거처럼 읽힌다. 고립, 외로움, 단절.
그 두 방향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는 감각이 있다.
혼자 있는데, 혼자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감각이 아닌 것. 누군가와 있었다면 아예 생기지 않았을 감각도 아닌 것. 오직 내가 나를 보고 있을 때, 그것도 어떤 판단 없이 그냥 목격하고 있을 때 불쑥 올라오는 것.
나는 이것을 혼자만 쓰는 장부라고 부르기로 했다.
다른 누구도 열람할 수 없는. 감사도 없고 비판도 없는. 항목이 쌓이는지 줄어드는지 확인해주는 사람도 없는. 그냥 나만 알고, 나만 기입하고, 나만 가끔 펼쳐보는 장부. 머그잔 자리가 비었다는 사실은 거기 아주 작은 글씨로 기록된다. 오늘 오전, 부엌, 수저 들다 멈춤. 아무것도 아님.

뒤집히는 지점
여기서 내가 쓰고 싶은 건 죄책감의 해소가 아니다.
사실 이 글을 처음 시작할 때 나는 다른 방향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도 탓하지 않는 죄책감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에서 온다' — 이런 방향. 꽤 그럴듯하고, 읽다 보면 "맞아, 나도 나한테 너무 엄격했어"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방향.
근데 수저 얘기로 돌아가보면, 그게 아니다.
나는 내가 머그잔을 제자리에 돌려놔야 한다고 특별히 기대했던 게 아니다. 그냥 그게 흐름이었다. 씻으면 제자리. 이건 규칙도 아니고 원칙도 아니고, 그냥 손이 하던 순서. 그 순서가 한 칸 빠졌다는 걸 발견했을 때 손이 멈추는 건, 나를 향한 높은 기준 때문이 아니다.
그건 더 오래된 무언가에서 온다.
말하자면 — 집이라는 공간이 제 모양대로 있어야 한다는 감각. 사물이 제자리에 있을 때 공간이 숨을 쉰다는 감각. 이건 내가 학습한 게 아니라 어딘가에서 몸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 감각이 어긋났을 때, 뭔가가 나에게 물어보는 거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왜?
탓하지 않으면서 물어본다는 게, 사실 더 무섭다.
관찰자가 된다는 것
나는 이 감각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걸 알아내는 게 이 글의 목적도 아니다.
다만 이상한 건, 이런 감각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조금 달라진다는 거다. 죄책감이라고 부르면 용서가 필요하고, 강박이라고 부르면 치료가 필요하고, 예민함이라고 부르면 극복이 필요한 것처럼 들린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이 따라붙는다.
근데 그냥 — '아, 오늘 손이 한 번 멈췄다'고 기록하면 어떻게 될까.
나만 아는 장부에 아주 작은 글씨로. 아무도 열람할 수 없는 자리에.
그리움은 과거에 있지 않다는 글을 쓸 때도 비슷한 감각이 있었다. 뭔가를 향해 손을 뻗는데 그게 시간 안에 있지 않다는 느낌. 이번엔 반대다. 잡아야 할 것이 있는데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냥 제자리에 없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