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안에 유통기한이 이틀 지난 두부가 있었다.
열어보기 전까지는 몰랐다. 그 두부로 찌개를 끓였고, 다 먹었고, 설거지까지 했다. 그리고 빈 용기를 헹구다가 뒷면의 날짜를 봤다. 7월 7일. 오늘이 9일이었다.
그 순간 위장이 잠깐 오그라들었다. 이미 다 먹은 뒤였는데.
그게 이 고백의 출발점이다.
이미 지나간 위험을 알아챘을 때, 몸은 왜 덜컥 내려앉는 걸까
두부 냄새가 이상하진 않았다. 끓이면서도 아무 낌새가 없었다. 배도 괜찮았다. 객관적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나는 용기를 버리면서 괜히 손을 한번 더 씻었다.
이 반응이 우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 그날 저녁 이불을 당기면서 — 그게 안도였다는 걸 알았다. 무사히 넘어갔다는 안도.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안도는 가볍지 않았다. 뭔가를 내려놓는 기분이 아니라, 뭔가를 비로소 감지한 기분이었다.
최악이 지나가고 나서야 최악이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를 처음 보는 것. 그게 안도인데, 그 안도에는 묘하게 식은땀 냄새가 섞여 있다.

나는 그걸 '아무 일도 없었다'고 부르기로 했다
여기서 고백해야 할 것이 있다.
나는 그 두부 날짜를 확인한 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 말할 이유가 없었다. 실제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나는 그걸 속인 걸까, 아니면 그냥 보고할 사항이 없었던 걸까.
이 경계가 나를 조금 불편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별일 없었어"라고 말할 때, 그건 두 가지다. 실제로 별일이 없었거나, 별일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아무 흔적이 남지 않았거나. 나는 후자였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솔직히 지금도 잘 모르겠다. 손을 한번 더 씻은 사람과 그냥 넘어간 사람의 결말이 같다면, 그 여분의 한 번이 의미하는 게 뭔지.
우리는 재난을 피한 게 아니라 재난이 그냥 빗겨간 경우에도, 자기가 잘 대처한 것처럼 느끼는 경향이 있다. 냉장고를 좀 더 자주 정리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실제로는 아무것도 안 했으면서.
그런데 여기서부터가 이상하다

이 에세이를 쓰면서 처음에 나는 '운'에 대해 쓰려고 했다.
안도의 감정이 사실은 운이 좋았다는 뒤늦은 자각이라는 이야기. 그리고 그 운을 실력으로 착각하는 인간의 패턴. 여기까지는 꽤 익숙한 방향이다. 읽은 적 있는 에세이 같은 냄새가 난다.
그런데 쓰다 보니 방향이 바뀌었다.
내가 불편한 건 '운'이 아니었다. 내가 불편한 건 — 안도를 느끼고 싶어서, 내가 위험했다는 사실을 뒤에 가서 살짝 부풀린다는 것이다.
유통기한 이틀이 지난 두부는, 사실 그렇게 위험한 게 아니다. 냄새도 없고 외관도 이상 없으면 대부분 괜찮다는 걸 나도 안다. 그런데 나는 그날 저녁 이불 속에서 그 두부를 조금 더 위험한 것으로 기억했다. 그래야 내가 안도할 자격이 생기니까.
이 문장이 너무 아름답지 않나요? — 라고 쓰기엔 아름다운 게 아니라 그냥 조금 창피하다.
안도하기 위해서, 내가 겪은 위험을 소급하여 키우는 것. 이게 나쁜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는데, 이게 내가 꽤 자주 하는 짓이라는 건 알겠다.
시험을 보고 나서 "진짜 망한 줄 알았어"라고 말할 때, 실제로 망할 것 같았던 건지 아니면 안도하기 위한 무대를 뒤에서 설치한 건지. 병원에서 검사 결과가 이상 없다는 말을 들은 뒤에야, 갑자기 그 전 이틀이 '굉장히 불안했던 시간'이 되는 것.
좋아하던 것이 시들해졌다면, 그게 식은 게 아닐 수도 있다 — 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에서 나는 감정이 뒤늦게 찾아온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 글도 비슷하게 보일 수 있는데, 다르다. 그건 감정이 느리게 도착하는 얘기였고, 이건 감정이 도착하기 위해 내가 사건을 손보는 얘기다.
고백하자면, 나는 지금도 이게 나쁜 일인지 모르겠다
안도는 진짜 감정이다. 두부 날짜를 보고 손을 씻은 것도, 이불 속에서 뭔가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은 것도. 그게 가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안도를 유지하기 위해 내가 사건의 크기를 은근히 조정한다는 것. 그게 기억이 작동하는 방식인지, 아니면 내가 특별히 이상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더 솔직히 말하면 — 나는 이 에세이를 쓰면서도 두부 이야기를 조금 더 극적으로 쓰고 싶었다. '속이 너무 안 좋아서 병원을 고민했다'는 식으로. 그러면 글이 더 잘 읽혔을 것이다. 실제로 배가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쓰지 않았을 뿐.
이 에세이가 독자에게 위로가 되거나, 무언가를 깨닫게 해주거나, 혹은 근사하게 마무리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그런데 그건 좀 이상한 욕망이다. 내가 쓴 것 중 가장 창피한 문장을 써놓고, 그게 보기 좋게 끝나기를 바라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