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저를 꺼내는 손이 잠깐 멈췄다. 찬장 두 번째 칸, 접시 무더기 바로 왼쪽. 그 자리에 항상 있던 머그잔이 없었다. 정확히는, 있어야 할 자리에 없었다. 어제 내가 꺼내서 씻고 건조대에 올려뒀으니까. 건조대에서 찬장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내가 그걸 안 했으니까. 별일도 아닌 그 사실을 인식하는 데 3초가 걸렸고, 그 3초 동안 뭔가가 흔들렸다. 뭘.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집에 혼자 있었다. 탓할 사람도, 탓받을 사람도 없는 평온한 아침이었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여름 비라서 소리가 두꺼웠다. 에어컨은 꺼진 채였고 실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특유의 그 냄새가 있다. 플라스틱과 냉기가 섞인, 약간 비릿하고 약간 고요한 그 냄새. 오늘 저녁 뭘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문을 열고 서 있을 때, 형광등 불빛이 얼굴에 닿는 그 온도. 차갑지도 않고 따뜻하지도 않은, 딱 애매하게 실온보다 낮은 그 느낌. 나는 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1인분을 위해 돌아가는 밥솥 소리가 부엌 구석에서 들렸다. 카운터 위에는 혼자 먹기 좋게 소분된 반찬 두 가지. 작은 그릇 하나. 젓가락 한 벌. 그 순간, 경이로움이라는 감정이 어디서 오는지 처음으로 이해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