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냉장고 앞에서 투썸플레이스 컵을 들었다가 손이 멈췄어요. 예전엔 두 개의 원이 겹친 로고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 컵엔 영문 'T'와 한글 자모가 은근슬쩍 섞인 마크가 찍혀 있더라고요. "어? 이거 언제 바뀐 거지" 하고 검색해보니, 최근 한두 달 사이에 무신사, 락앤락, 투썸플레이스, 마키나락스까지 줄줄이 로고를 새로 깎았더라고요. 오늘은 이 브랜드 리디자인 사례들을 놓고, 왜 어떤 브랜드는 로고를 확 바꾸고 어떤 브랜드는 수십 년째 안 바꾸는지 그 안의 계산을 뜯어보려고 합니다.

대한항공 로고 변경 이유 — 왜 '안 바꾸는 것'이 전략일까
사실 대한항공의 파란 태극 마크는 수십 년째 큰 틀이 거의 그대로예요. 항공사 로고는 브랜드 디자인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으로 다뤄지는 영역인데, 이유가 단순합니다. 비행기 꼬리날개에 새겨진 로고는 승객에게 "이 항공사는 안전하다"는 신뢰를 주는 시각적 약속이거든요. 색을 바꾸거나 상징을 흔들면 그 신뢰의 연속성이 끊긴 것처럼 느껴져서, 항공업계는 로고를 자주 갈아엎지 않는 걸 오히려 전략으로 삼는 경우가 많아요.
다만 최근 대한항공을 둘러싼 흐름을 보면 상황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아시아나항공과의 통합 과정에서 두 브랜드의 시각적 정체성을 어떻게 합칠 것인가가 계속 논의되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이런 인수합병 상황에서 항공사가 택하는 방식은 보통 두 가지예요. 하나는 기존 로고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상대 브랜드를 흡수하는 것, 다른 하나는 두 브랜드의 상징을 일정 기간 나란히 쓰다가 서서히 통합하는 것. 대한항공이 큰 틀에서 태극 마크를 고수하는 건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승객과 투자자 모두에게 동시에 보내는 셈이에요. 로고를 안 바꾸는 것도 엄연히 디자인 결정이라는 거, 이게 오늘 첫 번째로 짚고 싶은 포인트입니다.
기아 로고 변경 이유 — 이름에서 'Motors'를 지운 순간
반대로 기아는 로고를 꽤 과감하게 바꾼 사례로 자주 언급돼요. 기존 사각형 프레임 안에 각진 글자를 넣던 방식에서, 지금은 펜으로 한 번에 그은 서명처럼 이어지는 필기체 형태의 워드마크로 바뀌었죠. 여기엔 몇 가지 숨은 의도가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우선 '자동차 제조사(Motors)'라는 딱딱한 정체성에서 '이동을 다루는 브랜드'로 스스로를 재정의하고 싶었다는 점이에요. 전기차, 자율주행, 도심항공모빌리티까지 사업 영역이 넓어지면서 "우리는 차만 만드는 회사가 아니다"라는 선언이 필요했던 거죠.
기아 레드라는 브랜드 컬러도 이 서명형 로고와 함께 훨씬 또렷하게 부각됐어요. 색은 그대로인데 형태만 바뀌었을 뿐인데 브랜드가 갑자기 젊어 보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각진 선은 '고정된, 완성된 물건'을 연상시키고, 흐르는 선은 '움직이는, 계속 변화하는 무언가'를 연상시키거든요. 글자를 그리는 방식 하나로 회사의 정체성 선언을 대신한 셈이니, 이런 서체 선택의 힘이 궁금하다면 캘리그래피와 타이포그래피의 차이를 다룬 글도 같이 보면 재밌을 거예요.

최근 리디자인 사례들 — 브랜드마다 로고를 바꾼 진짜 타이밍
기아나 대한항공처럼 큰 브랜드만 로고를 바꾸는 게 아니에요. 최근 몇 주 사이에도 여러 브랜드가 조용히 얼굴을 바꿨습니다.
무신사는 2018년 이후 7년 만에 새 BI를 공개했는데, 기존 영문 대문자를 훨씬 두껍고 단단하게 다듬었어요(출처: 아시아경제). 온라인 플랫폼으로만 존재하던 시절엔 화면 속 작은 로고면 충분했지만, 이제 오프라인 매장과 글로벌 진출을 앞두고 있으니 멀리서도, 간판에 크게 걸려도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블랙 형태가 필요했던 거죠. 로고는 결국 그 브랜드가 어디까지 확장하려는지를 미리 보여주는 지도 같은 거예요.
락앤락은 밀폐용기 뚜껑을 닫을 때 나는 '찰칵' 소리에서 영감을 받아 새 그래픽을 만들고, 괄호 형태의 'L'과 쨍한 블루를 메인 컬러로 세웠다고 해요(출처: NHN커머스). 소리라는, 시각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감각을 로고 형태로 번역했다는 게 흥미로운데, 이게 바로 좋은 리디자인의 조건이에요. 제품을 쓸 때 느끼는 감각적 기억을 로고 하나가 대신 상기시켜주는 거죠.
투썸플레이스는 'T'와 한글 자모 'ㅆ', 'ㅁ'을 조합해서 한국 전통 기와집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로고를 다시 짰습니다(출처: 디자인 나침반). 이건 글로벌 진출을 염두에 둔 결정으로 보이는데, 영문과 한글의 조형을 동시에 품은 로고는 "한국에서 시작했지만 세계 어디서든 통한다"는 메시지를 형태 자체로 전달해요.
마키나락스는 올여름 심볼을 새로 추가하고 형광 옐로우그린으로 컬러를 바꿨는데(출처: 마키나락스), 산업용 AI라는 딱딱한 사업 분야에 이런 강렬한 색을 쓴 건 꽤 과감한 선택이에요. 이 여백이 말을 하고 있어요 — 로고 주변에 색을 확 채워 넣는다는 건 "우리는 조용히 있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나 다름없거든요.
브랜드 리디자인이 성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까지 사례를 늘어놓고 보면 공통점이 보여요. 성공하는 리디자인은 전부 '겉모습 교체'가 아니라 '이미 있던 것의 재확인'이었다는 거예요. 락앤락은 없던 정체성을 새로 만든 게 아니라 원래 소비자가 느끼던 '찰칵'이라는 감각을 형태로 옮겼고, 기아는 없던 사업을 지어낸 게 아니라 이미 넓어진 사업 범위를 로고가 뒤늦게 따라잡은 거였죠.
리디자인이 실패하는 경우는 대부분 반대예요. 소비자가 전혀 못 느끼던 걸 로고만 먼저 바꿔서 "이제부터 우리는 이런 브랜드입니다"라고 일방적으로 선언할 때, 사람들은 그 로고를 낯설다 못해 불편하게 느낍니다.
LogoLounge가 3만 개 이상의 로고와 브랜드 아이덴티티 시스템을 분석해 발표한 리포트에서도 결국 강조하는 건 일관성이에요(출처: Lady Learner). 형태는 바뀌어도 그 브랜드가 오랫동안 쌓아온 색이나 상징, 소리 같은 감각적 자산은 어떻게든 이어가야 한다는 거죠. 대한항공이 태극 마크를 고수하는 것도, 기아가 빨간색만은 지킨 것도 같은 원리예요. 바꿀 건 바꾸되, 사람들이 그 브랜드를 알아보는 마지막 실 한 가닥은 절대 놓지 않는 것.

그래서 오늘 카페 가면 뭘 보면 될까
다음에 카페나 편의점 냉장고 앞에 설 일이 있으면 로고를 한 번 더 들여다보세요. 형태가 각졌는지 흘러가는지, 색이 쨍한지 차분한지, 그 브랜드가 지금 어떤 방향으로 확장하고 싶은지가 전부 그 안에 적혀 있어요. 로고는 그냥 예쁜 그림이 아니라, 브랜드가 소리 내지 않고 하는 가장 정직한 자기소개거든요.
📎 참고한 자료
- 무신사 로고 리뉴얼 관련 보도 (출처: 아시아경제)
- 락앤락 로고 리뉴얼 관련 보도 (출처: NHN커머스)
- 투썸플레이스 BI 변경 관련 보도 (출처: 디자인 나침반)
- 마키나락스 로고 리브랜딩 관련 보도 (출처: 마키나락스)
- LogoLounge 2026 로고 트렌드 리포트 관련 보도 (출처: Lady Learn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