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장실 문을 닫고 세면대 수도꼭지를 끝까지 돌렸다. 찬물이 손등을 타고 흘렀고 손끝은 금방 아렸는데, 방금까지 언성을 높이던 목소리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직 웅웅거리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소리가 더는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화가 나야 할 자리엔 서늘한 물소리만 고여 있었다. 그때 알았다. 나는 포기한 게 아니라 체념한 거였다. 둘은 완전히 다른 동네에 사는 단어라는 걸, 그 물소리를 들으면서 처음 실감했다. 싸움을 그만둔 사람에게 나타나는 다섯 가지 순간 사람들이 "체념했다"는 말을 쓸 때 떠올리는 장면은 대체로 비슷...

새벽 다섯 시 반. 알람이 울리기 십오 분 전에 눈이 떠졌다. 천장을 보는데, 뭔가 이상하다. 무너진 건 없다. 아무 일도 없다. 어제 저녁도 무난했고, 내일 일정도 특별히 무섭지 않다. 그런데 이 묵직함은 뭔가. 이불 안이 너무 따뜻해서 오히려 불편한 것 같은, 숨이 살짝 짧은 것 같은.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는 것 같은 느낌. 손을 이불 위에 올려두고 천장의 작은 얼룩을 본다. 저 얼룩, 지난달에도 있었나? 여기서 대부분의 사람은 스스로를 달랜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일어나면 돼. 그리고 그 달램이 아무 이유 없는 것처..